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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큰 별이 지다버섯박사 망절일랑씨 별세
2012년 08월 29일 (수) 15:43:11 정영한 명예기자 ysinews@naver.com

버섯박사 망절일랑(網切一郞 , 1942~ 2012.8.21)

 

우리나라가 해방되기 직전인 1942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망절일랑씨는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즉 일본인으로 태어났다.

 

이후 해방이 되면서 부모는 강제송환되고 자신은 졸지에 고아로 한국에 남게 되면서 외가의 성을 따라 `양일랑`이라는 이름으로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해 놀림을 받으면서 자랐다.

 

이후 양일랑은 병역의무까지 마쳤으며 1965년 한ㆍ일 국교정상화에 따라 NHK방송의 도움으로 규슈(九州) 가고시마현(鹿兒島縣) 다네가시마에서 암으로 투병 중이던 아버지와 연락이 되었고, 29세때 일본 이름과 국적을 회복했으나 부모의 사망과 함께 1970년 한국으로 귀화, 우리고장 양산에서 농업을 시작하였다.

 

법원을 통해 일본식 이름의 회복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중재안으로 일본이름의 한자를 한국식으로 읽은 망절일랑(網切一郞)으로 되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1가구 10명만이 존재하는 망절씨의 시조가 되었다.

1972년 벼농사의 부진으로 버섯농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백지상태에서 출발하여 볏짚결속기, 볏짚절단기, 솜 터는 기계, 폐면 침수기와 종균 분쇄기, 폐유 난방기, 병두껑 세척기등을 개발하면서 난관을 극복해 왔다.

 

망절일랑씨는 그동안 수많은 상을 받았지만 1980년부터 내송리 이장으로 있으면서 당시 양산군수로 부터 받은 <자랑스런 이장상>이 가장 영예롭다고 말할 정도로 일본인이 아닌 귀화한 한국인으로서 이웃과 서로 융화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의 창의적인 버섯재배는 대단한 성과로 이어져 1992년 <제1회 경상남도 자랑스런 농어민상> 수상을 시작으로 1999년 <양산 최초의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었으며

 

1996년과 2000년 두차례에 걸쳐 <농협중앙회 새농민상>을 수상했고, 역시 2000년에 <농업기술부문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1994년 새송이버섯 재배에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팽이버섯, 새송이버섯, 애느타리버섯, 버들송이버섯 등에 대한 친환경농업 인증을 받았으며, 또 2004년에 수삼보다

 

사포닌 함량이 40%나 많은 홍삼새송이버섯을 개발하여 전국을 깜짝 놀라게 했고, 2005년에는 미네랄 고함유 버섯 개발 등 각종 기능성 버섯을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특허 출원을 하였다.

 

망절일랑씨의 농업에 대한 열정은 KBS `6시 내고향` 및 MBC `고향에 아침`을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로 `버섯박사`로 불리우는 망절일랑씨는 2005년 <제11회 세계농업기술상>을 수상했고 최근 2008년에는 농협중앙회 경남본부가 상금 1억원의 <제2회 농협 문화복지대상 최우수농가부문 수상자>로 선정했다.

 

현재 큰아들 망절용씨, 작은아들 망절웅씨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동면 내송의 버섯재배 <망절농장>은 택지개발로 인하여 모두 헐리고,

 

그 대신 2009년부터 광합성 세균을 활용한 무농약 친환경 수경농법 상추재배의 연구에 들어가 2010년 올해 처음으로 맛과 영양이 매우 뛰어나고 경제성도 탁월한 상추 재배에 성공하면서 <상추박사>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하여 또다시 주목받는 농업인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지난 2000년부터 일본 가고시마현과 양산시 농민간의 홈스테이 교류를 추진해 오고 있으며 자신이 생활해 왔던 동면초등학교의 꿈나무 입학생에게 장학금 지급은 물론, 2008년에는 양산시에 인재육성 장학기금으로 1천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망절일랑씨는 특별한 성씨를 가지게 되어 어려움을 겪었던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의 성이 특이한 만큼 죄를 지으면 경찰이 잡기도 쉬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선행을 하면 모든 이들이 기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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